먹고 남은 음식의 보관법까지 설계하는 일본 아이스크림 브랜드
패키지가 그 자체로 제품의 정체성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리나가 제과가 1995년에 출시한 '판초코 아이스(板チョコアイス)'도 그래요. 이 제품은 종이 상자에 담겼을 때 가장 매력적입니다.
모리나가 제과가 만든 '판초코 아이스(板チョコアイス)'는 패키지가 비닐이 아닌 종이 박스입니다. 중앙 절취선을 따라 박스를 뜯으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감싸는 두툼한 초콜릿이 모습을 드러내요.

모리나가 제과는 2026년 4월 27일부터 이 제품의 패키지를 새롭게 바꿔 기간 한정으로 출시했습니다. 이름은 ‘삽입 코믹 패키지’. 박스 겉면에는 일러스트 만화가 그려져 있고, 상자를 끼워 짧게 만들면 대사와 장면이 바뀌는 구조예요. 원래는 도서관에서 각자 책을 찾고 있던 두 남녀가 상자를 붙이고 나면 손이 닿아 당황하는 장면으로 바뀌는 식이죠.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디자인은 총 10가지 종류로, 감성적인 프로모션 영상도 함께 공개됐습니다.


종이 상자에 든 아이스크림의 숨겨진 기능은?
이번 기획은 귀여움이나 위트를 전달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닙니다. 판초코 아이스가 가진 실용적인 기능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들기 위한 설계였어요.
판초코 아이스의 박스형 패키지에는 원래부터 숨겨진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을 상자에 다시 끼워 냉동실에 컴팩트하게 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아이스크림은 한 번에 다 먹기 부담스러운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남기면 애매하고, 결국 다 먹고 나면 괜히 과하게 먹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고객의 고민을 알게 된 모리나가 제과는 패키지의 장점을 살려 판초코 아이스를 ‘여러 번에 걸쳐 나눠 먹어도 되는 제품’으로 포지셔닝합니다.
삽입 코믹 패키지는 이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아요. 대신 상자를 ‘다시 끼우는 행동’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죠. 재미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제품의 사용 방식을 함께 학습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왜 판 형태로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모리나가 제과는 어쩌다 ‘판초코 아이스’를 만들게 된 걸까요? 제품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5년입니다. 당시 모리나가 제과는 자사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을 고민했고, 그 해답을 전문 분야인 ‘초콜릿’에서 찾았어요. 당시는 지금처럼 냉방 환경이 좋지 않아 여름이 되면 초콜릿 매대가 크게 줄어들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발상이 ‘여름에도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이었죠.
그 결과 탄생한 판초코 아이스는 제품의 약 45%가 초콜릿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반 초콜릿 아이스크림의 약 3배 수준이에요. 녹는점이 낮은 초콜릿을 사용해 냉동 상태에서도 입 안에서 부드럽게 녹도록 설계했죠.
여기에 판 형태를 더해 ‘오독오독한 식감’까지 강조했습니다. 이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금형 개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전국 판금 공장을 찾아다닌 끝에 기존 초코 코팅 아이스크림에서는 볼 수 없던 독특한 식감을 완성하게 됩니다. 출시 직후 시장에 빠르게 자리 잡았죠.
한때 단종됐던 아이스크림이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한 3가지 비결
그러나 초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판초코 아이스의 매출은 1997년부터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결정적인 패착은 1998년에 단행한 패키지 변경이었습니다. 먹기 편하게 패키지를 박스에서 필름으로 바꿨는데, 소비자 눈에는 여느 초코 아이스크림과 다를 바 없어 보이게 된 것이죠. '판 초콜릿스러움'을 전달하던 박스가 사라지자 정체성도 함께 사라졌고, 결국 2002년 봄부터 2003년 봄까지 판매 중단을 겪게 돼요.
이처럼 뼈 아픈 시간을 보냈던 판초코 아이스가 최근에는 매출 상황이 딴판입니다. 2024년에 전년 대비 28%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달성하고, 2026년 1분기 결산 결과도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했어요. 최근 5년간 236% 성장이라는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배경에는 ‘연중 판매’, ‘계절 한정 상품 전개’, ‘프로모션 전략’이 있었어요.
우선 가을, 겨울을 중심으로 판매됐던 판초코 아이스는 2020년부터 연중 판매로 전환되었습니다. 다만 상큼한 맛을 찾게되는 계절적 특성에 맞게 초콜릿 비율은 유지하면서 지방 배합을 조정해 뒷맛을 산뜻하게 바꿨어요. 그러자 여름철 매출이 상승했죠. 가을, 겨울에는 ‘화이트 판초코 아이스’를 출시하거나 ‘생일 케이크 맛’을 출시하는 등 고객의 선택지를 넓혔고요.

여기에 ‘진격의 거인’, ‘명탐정 코난’, ‘주술회전’, ‘도라에몽’ 등 인기 콘텐츠와 협업하며 신규 고객 유입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진격의 거인’ 한정 패키지는 다 먹고난 종이 박스를 세워 놓으면 만화책 단행본을 다 모아놓은 듯한 연출로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패키지 본연의 정체성을 활용한 덕분이에요.

부활의 열쇠는 ‘자기다움’
지난 30년 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판초코 아이스는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다시 한번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는 비결은 ‘정체성’에 있어요. 오직 이 제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정체성이 흐려지면 소비자는 떠났고, 선명해질 때 다시 돌아왔습니다.
물론 시대에 맞춰서 유연하게 변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강점일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포기해선 안되는 한 가지는 스스로의 개성과 차별화 포인트 아닐까요? 우리 제품과 서비스에서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없어졌을 때 고객이 가장 아쉬워할 것은 무엇일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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