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바오 산거우 | 인쇄 실수 아닙니다, 상하이 지하철역에 등장한 흐릿한 광고들

요즘처럼 홍보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는 더 많은 정보, 더 선명한 화질, 더 화려한 기술로 만든 광고만 살아남을 것 같은데요. 정작 사람들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가봐요. '광고의 봄이 돌아온 것 같다'는 평을 받은 상하이 지하철역의 광고는 전부 흐릿하고 알아보기 어려웠거든요.

타오바오 산거우 | 인쇄 실수 아닙니다, 상하이 지하철역에 등장한 흐릿한 광고들
©淘宝闪购

“이거 인쇄 잘못된 거 아니야?”

3월의 아침 출근길, 상하이 인민광장역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겁니다. 지하철역의 긴 복도를 따라 23개의 광고판이 줄지어 흐릿하게 인쇄되어 있었거든요. 광고가 선명해도 모자란 마당에 블러처리를 한 듯 흐려져 있으니 인쇄 실수를 의심할 만했죠.

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이 상하이 인민광장역 지하철에 설치한 광고판. 이뎬뎬의 로고가 흐릿하게 변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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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이 상하이 인민광장역 지하철에 설치한 광고판. 유명 브랜드들의 로고가 흐릿하게 변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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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이 상하이 인민광장역 지하철에 설치한 광고판. 사람들이 흐릿한 미니소의 로고를 사진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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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내용도 특이했어요. 커다란 광고판에는 별다른 카피나 내용도 없이 빈 배경에 브랜드 로고만 크게 놓여 있었어요. 그나마 하이디라오, 루이싱 커피, 패밀리마트, 이뎬뎬 등 인지도 높은 브랜드의 로고라 형체와 색깔만 보고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광고판을 보던 사람들은 오른쪽 아래에 작게 적힌 문구를 보고서야 광고의 뜻을 이해하게 됐어요.

‘타오바오 번개배송, 더 빠르게 집까지(淘宝闪购,更快到家)’

이번 광고를 준비한 건 중국 배달 플랫폼 ‘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입니다. 요즘처럼 배달앱 경쟁이 치열한 때에 ‘빠른 속도’는 숙명과도 같아요. 그래서 플랫폼들은 하나 같이 ‘초고속 배송’, ‘즉시 도착’ 같은 용어를 사용하며 홍보하죠. 하지만 타오바오산거우는 빠른 속도를 말로 설명하는 대신, 느끼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쏜살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흐릿한 잔상만 남는다는 점에 착안해 23개의 유명 브랜드 로고를 전부 흐릿하게 표현한 거예요.

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이 상하이 인민광장역 지하철에 설치한 광고판 속 로고들. 전부 흐릿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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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광고만 보고도 타오바오가 엄청난 속도로 상품들을 배송한다는 걸 직관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식상한 마케팅 문구를 다 빼고 단순한 방식으로 핵심을 찔렀더니 오히려 쉽게 각인될 수 있었어요.

타오바오산거우가 심플한 크리에이티브로 핵심을 겨냥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타오바오산거우의 유니폼은 예전부터 레이싱 수트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오렌지색과 블랙을 조합한 디자인이 맥라렌 F1의 상징인 파파야 오렌지 컬러를 연상시켰거든요. 브랜드는 이참에 아예 2026년 F1 중국 그랑프리에 프리미엄 파트너로 공식 참여합니다. 그리고는 라이더들을 드라이버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케팅 영상들을 제작하죠. 모두 플랫폼의 배송 속도를 직관적으로 인식시키려는 노력이에요.

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의 배달기사 유니폼. F1 그랑프리 맥라렌의 유니폼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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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바오산거우(淘宝闪购, 타오바오 번개배송)가 F1 그랑프리를 협찬한 모습. 배달 기사들이 레이싱 카를 탄 듯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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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런 시도에 오히려 더 크게 반응합니다. 상하이 지하철역 광고를 보고 ‘광고의 봄이 돌아온 것 같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예요. 어쩌면 좋은 크리에이티브란 많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순간 이해되는 것 아닐까요? 타오바오산거우가 복잡한 설명 대신 장면 하나로 속도를 느끼게 만든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