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퓨매틱 | 향수 소비의 단위가 바뀐다, 1회 분사마다 결제하는 자판기의 유행 조짐
보통 향수를 구입할 땐 본품 하나를 통째로 삽니다. 그게 아니면 작게 소분된 샘플 사이즈를 사고요. 그런데 앞으로는 '분사' 단위로 향수를 구입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 거예요. 일본에 드디어 스프레이형 향수 자판기 '퍼퓨매틱'이 상륙했거든요.
향수업계가 오랫동안 일본 시장을 가리켜온 말이 있습니다. ‘향수 사막’으로,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향수가 잘 팔리지 않아 생긴 말이에요. 유럽은 2000년대부터 니치 향수가 발달할 정도로 향수 시장이 성숙한 반면, 일본의 시장 규모는 유럽의 10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마케팅 예산을 아무리 투입해도 럭셔리 브랜드 향수조차 잘 팔리지 않았어요.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우선 일본인들은 강한 향을 선호하지 않아요. ‘향기 공해(スメルハラスメン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향으로 불쾌감을 주는 걸 조심스러워합니다. 그런데 대중적인 향수들은 생산 안정성과 원가율 절감을 위해 합성 향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향이 강하다보니 손이 잘 안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판매 방식’입니다. 유럽의 판매 방식이 일본에 그대로 들어오면서 일종의 진입 장벽이 생겼어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향수 매장에서 직원들이 직접 시향지에 향을 뿌려주다 보니 마음 편하게 제품을 경험하고 구경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꼭 구매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도감도 느꼈고요. 결국 여러 요인이 겹치며 향수는 일부 애호가만의 아이템이 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향수 사막이라는 말도 옛 말이 되어가고 있어요. 민간 조사기관 후지경제에 따르면, 일본의 향수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547억 엔(약 5,470억 원)에 이르며 2020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그간의 견고한 장벽을 흔든 건 코로나19 팬데믹이었어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좋은 향기의 중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죠. 다들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향수를 뿌리고 마음 편하게 밖에 나갈 수도 있었고요.
젊은 세대가 향수 시장을 견인하면서 일본에는 향수 구독 서비스, 향수 가챠 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2026년, 향수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해요. 스프레이형 향수 자판기 ‘퍼퓨매틱(PERFUMATIC)’입니다. 이용 방법은 단순해요. 돈을 내고 터치패널에서 향수를 고른 뒤 손목을 가져다 대면 1회분이 분사되죠. 가격은 1회당 100~500엔(약 1~5천 원). 본품을 사면 수십 만원인 하이엔드 향수를 최소 천 원대에 뿌려볼 수 있습니다. 라인업은 매달 바뀌기 때문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향을 만날 수 있어요.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스프레이형 향수 자판기를 찾았습니다. 데이트 장소에 가기 전에 향으로 기분을 내기도 하고, 집에서 향수 뿌리는 걸 잊었을 때 급하게 뿌리기도 했어요. 물론 본품 구입 전에 자신의 취향을 찾아보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스페인 기업 퍼퓨매틱 그룹 BCN이 개발한 이 자판기는 현재 65개국에 3,000대 이상이 설치돼 있어요. 일본에서는 향수 미디어를 운영하는 아뮬레트(Amulette)가 2026년 2월 오사카 루쿠아에 처음 도입했고, 10일 만에 2,000명이 넘게 사용했죠. 이후 3월에는 치바현 이온몰에도 추가 설치됐고, 상업시설 문의만 50건을 넘어섰어요. 아뮬레트는 2026년 중 30대 이상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닛케이 트렌디는 이미 '2026년 히트 예측 랭킹' 3위로 퍼퓨매틱을 꼽았어요. 매장 직원 없이 셀프로 다양한 향수를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는 이유였습니다. 0.2㎡의 공간만 있으면 자판기를 설치할 수 있으니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도 여러 향수 브랜드를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향수 사막이라 불리던 나라에서 이제 자판기가 새로운 유행의 조짐을 만들고 있습니다. 파고든 건 시장의 빈자리가 아니라, 향수 매장 앞에서 끝내 문을 열지 못했던 사람들의 망설임이었습니다.진입 장벽을 없애는 것만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걸 향수 사막이 증명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