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케첩은 구워 드세요, 일본 식품 기업 카고메가 성숙 시장에서 수요를 만드는 법
일본 식품 기업 카고메(カゴメ)는 어떻게 케첩 시장의 한계를 돌파할까요? 오늘은 신제품 개발이 아닌 '사용법 혁신'으로 매출을 높인 일본 식품 마케팅을 분석합니다.
일본에서 '토마토' 하면 빠지지 않는 기업이 있습니다. 식품회사 카고메(カゴメ)예요. 일본에서 토마토를 대중화하고, 토마토 케첩을 일반 가정에 정착시킨 주역이죠. 연간 6,000만 병의 케첩을 판매하는 카고메가 2022년부터 꾸준히 밀고 있는 키워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구운 케첩(焼きケチャップ)'. 케첩을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넣고 잘 볶아 먹으면 풍미가 살아나고 산미가 부드러워진다는 거예요.

얼핏 보면 평범한 레시피 제안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정교한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성숙기에 접어든 식품 시장에서 기존 제품의 사용 맥락을 바꿔 새로운 수요를 만들려는 시도거든요. 카고메의 '구운 케첩'을 통해 일본 식품 기업이 성숙 시장을 다루는 방식을 살펴볼게요.
왜 케찹을 볶아 먹으라고 하는 걸까?
카고메가 일본에서 토마토 케첩을 출시한 건 1908년입니다. 2024년 기준 일본 케첩 시장에서 55.5%의 점유율로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죠. 하지만 시장 점유율이 높다고 마냥 안심할 상황은 아닙니다. 케첩은 주로 낮은 연령대의 수요가 많아요.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는 일본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소비 패턴도 오므라이스나 나폴리탄처럼 양식 메뉴 중심으로 굳어져 있었어요.
문제는 제품 경쟁력이 아니었습니다. 카고메 케첩은 토마토, 당류, 식초, 소금, 양파, 향신료만으로 만들어져요. 착색료나 방부제는 전혀 들어가지 않고, 원재료는 모두 천연이죠. 더 건강하게 만든다든가, 칼로리를 낮게 한다든가 하는 기능적 차별화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결국 성장하려면 제품이 아닌 다른 것을 바꿔야 했죠.
이때 카고메는 한 가지 단서를 발견합니다. 소비자들이 케첩을 '뿌리거나 찍어 먹는 대상'으로만 인식하면서 새로운 사용 장면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거예요. 그리고 케첩을 조리 용도로 쓰는 사람일수록 사용 빈도가 높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이 케첩을 '볶아서' 쓰게 만들면 어떨까. '구운 케첩'은 그 질문에서 시작됐어요.
사실 이 조리법 자체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일부 가정에서는 케첩을 볶아 사용해 왔죠. 카고메가 한 일은 이 익숙한 조리법에 '구운 케첩'이라는 이름을 붙여 기억하기 쉽게 만든 것이었어요.
결국 핵심은 제품 혁신이 아니라 사용법 혁신이었습니다. 사용 맥락이 바뀌면 소비 빈도가 늘어납니다. 실제로 '구운 케첩' 홍보 이후 케첩의 조리 용도 사용 비율은 47.9%까지 상승했고, 케첩 매출은 4년 연속 성장했어요.
소비자에게 새로운 습관을 심어주는 법
새로운 사용법을 제안하는 것과 소비자가 실제로 행동하게 만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케첩을 볶아 드세요'라고 말만 하는 것으로는 행동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카고메는 낯선 조리 습관을 익숙하게 만들 장치를 설계했습니다. ‘구운 케찹’을 처음 제안했던 2022년에는 국민 캐릭터 헬로키티와 협업하며 레시피와 응용법을 담은 콘텐츠를 제공해왔어요. 2026년에는 도라에몽을 광고 캐릭터로 기용했죠.

광고 속 도라에몽은 바쁜 아침 뭘 만들지 고민하는 주부 앞에 등장해 ‘그럼 케첩을 볶아보자’고 제안합니다. 언제나 진구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라에몽처럼, 구운 케첩도 주방에서 구세주가 되어줄 수 있다는 메시지예요. 도라에몽을 선택한 건 인지도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캐릭터의 정체성과 브랜드 메시지를 일치시킨 선택이었죠.


광고가 끝이 아닙니다. 카고메는 갓 튀긴 프렌치프라이와 함께 일반 케첩과 구운 케첩을 동시에 제공하는 비교 시식 푸드트럭도 운영했어요. 맛의 차이를 말로 설명하는 대신 직접 느끼게 한 겁니다. 자연스럽게 '어느 쪽이 더 맛있나' 하는 이야기도 오가게 되고, 그 소소한 논쟁이 홍보로 이어지는 구조이기도 해요.
카고메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 '구운 케첩'의 인지도는 약 30%입니다. 실제 실천률은 15%에 머무른다고 하니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구운 케첩을 시도한다면 그만큼 매출도 늘어나겠죠.
일본인 입맛과 생활에 맞는 케첩
카고메의 역사를 보면 '구운 케첩'은 갑작스러운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이 기업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나의 질문을 던져 왔어요. 어떻게 하면 토마토를 일본인의 생활 속에 더 깊이 정착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죠.
창업자인 카니에 이치타로는 토마토가 일본인의 입맛에 맞도록 당도와 산미, 수분 등의 균형을 유전자 변형 없이 교배만으로 개량해 왔습니다. 케첩 또한 처음부터 일본인의 입맛을 고려해 만들어진 것이었죠. 1960년대에는 플라스틱 튜브형 용기를 개발해 사용성을 혁신하기도 했어요.
몇년 전부터는 카고메의 팬 커뮤니티 사이트인 '&KAGOME'를 운영하며 충성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 오므라이스 위에 케첩으로 메시지를 적는 '오므레터' 활동으로 케첩을 통해 식탁에서 새로운 경험을 만들도록 유도해왔습니다. '구운 케첩'도 그 연장선에 있어요.

카고메는 단순히 토마토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토마토가 소비되는 문화를 설계하는 기업에 가까워요.
성숙한 시장에서 성장하려면 반드시 신제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카고메의 사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줘요. 익숙한 제품도 사용법을 달리한다면 다시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죠. 120년 된 케첩을 다시 눈여겨보게 만든 건 더 좋은 케첩이 아니라, 새로운 사용법이었던 것처럼요.